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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의 그래픽디자인 / Graphic Design in the White Cube

Essays by Peter Biľ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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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그래픽디자인 전시 기획엔 항상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전시를 위한 공간은 일상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현실세계로부터 유리시키기 때문이다. 디자인 결과물인 책, 음반, 포스터 등이 갤러리에 전시될 때, 디자인물의 이해를 위한 문화, 상업, 역사적 맥락이 배재되게 되며 디자인작업의 존재이유는 맥락으로부터 유실되고 그 의미, 활력과 사용의 역동성은 마멸되고 냉동된 모습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이런 방식의 디자인 전시는 날고 지저귀는 새를 박제하여 관찰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픽디자인을 책과 잡지를 넘어선 ‘오브제’로 보는 것, 그리고 그래픽디자인을 전시공간인 ‘화이트큐브’ 내에서 보게 되는 것이 점점 일반화되는 추세다.

그래픽디자인이란 분야의 전문화와 인정을 위해 오랜 기간 분투해 온 디자이너들에게 전시행위는 디자인이란 직업군의 프로모션 방편으로 여겨져 왔다. 전시기관이 선택한 디자이너, 대중에게 인정받은 디자이너를 선사받는 클라이언트, 그리고 전시작품을 획득한 갤러리 등 디자인전시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켜 주는 듯하다. 완전히 다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던 디자인이 전시라는 낯선 환경에서 재활용되어 다시 제시되는 것이다. 디자인출판, 그리고 작품해설이 부재한 애매한 디자인이 모인 일회성 도서에서는 더욱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이런 출판물이 디자이너의 책꽂이를 빼곡히 채우고 있으며 이런 책들이 연구, 집필, 출판과정이 훨씬 고된 다른 책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요즘 최신의 디자인 트렌드는 디자이너의 자율성을 반영하여 디자인이 소비주의의 오브제로만 인식됨을 거부하고 예술과 맥을 함께하려는 디자이너의 개인작업주의다. 이 디자이너세대가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에서 벗어나려한 첫 세대는 아니다. 본 전시에 참가한 일부 디자이너들의 은사이며 저명한 네덜란드 디자이너인 카렐 마르텐스 (Karel Martens)는 외부 클라이언트에 의지한 디자인커리어와 상관없는 예술적 작업들을 해왔다. 그의 동료인 Hendrik Nicolaas Werkman이나 Willem Sandberg의 인쇄실험의 전통을 토대로, 마르텐스는 여가시간에 인쇄와 콜라쥬를 연구/실험했고, 이런 작업들은 그의 실질적 디자인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오늘날의 몇몇 디자이너는 매일 자발적동기의 작업을 하기도 하며 근무시간과 자유시간 프로젝트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를 이런 디자인은 그래픽디자이너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들은 아직 주변부에 불과하며, 그 중 대다수가 실험적 방식을 작업에 적용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기금의 지원을 해주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에 거주하는 실정이다.

그래픽 디자인은 그동안 내부 보다는 외부적 동기에 의한, 클라이언트를 위한 서비스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클라이언트 없는 디자인 작업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의 연옥과 같다. 그래픽 디자인은 짧은 역사를 가진 아직 발전중인 분야이며 저술, 조직, 컨셉화, 반성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중이다. 그래픽 디자인은 더 이상 기존의 명함과 로고 등으로만 정의되던 디자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정의定義의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이들이 이해한다는 가정 하에 그래픽 디자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특히 제22회 브르노 국제 그래픽디자인 비엔날레 (22nd International Biennale of Graphic Design Brno)의 맥락에서 보자면, 43년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전형적 그래픽 디자인전시에 대한 고정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픽디자인이 실제 포함하는 내용만큼이나 유동적 개념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접근해보면, 타 분야와 달리 디자이너의 작업은 제재 받거나 내용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디자이너들은 다양하고 모순적인 많은 아이디어들을 수용하고 또 표현하도록 훈련받는다. 스튜어트 베일리(Stewart Bailey)에 의하면 그래픽디자이너는 유령과 같은 직업이다. 스튜어트 베일리는 ‘…그래픽 디자인은 다른 주제들이 미리 존재함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선천적이지 않은 유령과 같다. 접점인 동시에 회색지대인 것이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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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고심하는 부분에 주의를 환기 시킨다.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자신의 행위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이미 고정된 정의를 뛰어 넘는 것이다. 본 Graphic Design in the White Cube 展에서 선보이는 디자이너들은 예술, 디자인, 음악, 연극, 저술 등의 세계를 막힘없이 넘나든다. 나 자신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가 하는 것이 그냥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것이 나의 배경이며 나의 그런 배경이 내 작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양한 작업을 한다, 그 작업들은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타이틀에 적합할수도 또는 아닐 수도 있다’, 라고 최근 인터뷰에서 베일리는 밝히고 있다. ’그래픽디자인은 많은 행위들을 포함하며 그 정의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래픽디자인은 아직 새로운 분야기 때문에 최고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분야를 재창조하여 놀라게 하는 이들이다.’ 며 프랑스 디자이너인 M/M Paris 같은 디자이너들은 직접적으로 그래픽디자인의 정의에 도전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엑스페리멘탈 젯셋(Experimental Jetset)의 멤버들은 디자인에 대한 제한적 관념은 오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당연한 예제들 몇 개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태동을 대략 마리네티의 미래파 선언과 피트 즈바르트(Piet Zwart)의 Dutch Cable Factory의 전단, 쿠르트 슈비터스 (Kurt Schwitters)의 메르츠(Merz) 출판물 사이쯤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그래픽 디자인은 항상 굉장히 이질적 요소들이 합성된 분야라는 것이다, 예술, 정치, 시, 산업 등등으로 말이다.’ 이 같은 그들의 견해로는, 전시 참여자 모두가 이런 전통의 일부이며 ‘고전적 의미의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M/M, 베일리 그리고 엑스페리멘탈 젯셋 은 갤러리의 세계의 이방인이 아니다. M/M은 여러 권위있는 아트 갤러리에서 많은 개인전을 가졌고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메이저 행사에서 공동작업을 하였다. 베일리Bailey는 연극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하였으며 가장 최근에는 데이비드 라인퍼트 (David Reinfurt, 덱스터 시니스터 Dexter Sinister)와 키프로스의 유럽 컨템포러리 아트 비엔날레인 매니페스타 6 (Manifesta 6)를 조직중인데, 경제적 생산을 위한 모델을 통해 Manifesta 6 School의 모든 출판물을 인쇄하는 프로젝트이다. 젯셋은 런던, 위트레흐트, 아른헴 등에서 개인전을, SFMOMA 샌프란시스코, Kunsthal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스테델릭(Stedelijk) 박물관 등지에서 단체전을 가졌다. 2005년, M/M은 빠리의 현대미술 박물관인 빨레 드 토쿄 (Palais de Tokyo)에 초청받아 요셉 코주스 (Joseph Kosuth), 제프 쿤스( Jeff Koons),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telan), 바네사 비크로프트 (Vanessa Beecroft), 다카시 무라카미 (Takashi Murakami,) 마이크 켈리 (Mike Kelley) 등 20세기 후기의 주요 예술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시의 목적은 분야의 경계를 흐리는 여러 다른 맥락들에서 같은 작품이 어떻게 다양하게 해석되느냐였다.

‘그래픽디자인’, 은 편재하는 그 속성 때문에 우리 주위를 둘러싼 시각문화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때문에 이런 영향을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타 시각예술과의 맥락에서 논의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박물관에 제시되었을 때, 전시는 유리 케이스 안의 단순한 소극적인 제시 이상의 것을 지향하여야 할 것이다. 고립된 작품은 작품 배후의 논리와 과정에 관한 진정한 정보를 담지 못한다. 좀 더 확실히 명시되어야 할 것은 작품의 확고한 목적과 전시를 통한 접근으로 사물을 다른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 그리고 방문객이 책방이나 복잡한 거리 대신에 갤러리란 공간에서 ‘그래픽디자인’과 물리적 인터랙션을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슈들을 다루려는 디자인 전시의 시도들이 있어왔다. 그 예로 릭 포이너 (Rick Poynor)는 현재 세계 순회 중인 런던의 ‘커뮤니케이트(Communicate)’라는 제목의 대규모 영국 그래픽 디자인의 회고전을 준비했다. 이 전시는 현대문화에 미친 그래픽 디자인의 영향력을 검토하려는 취지로 클라이언트의 충족을 위한 작품에 제한되지 않는 실험적 작품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조명한다. 이 전시는 바비컨 아트 갤러리 (Barbican Art Gallery)의 8개 룸을 채웠다. 언론학 전공과 출판의 경력을 가진 포이노는 이 방들을 책의 ‘챕터 (chapter)’처럼 조직하여 각 섹션이 작품의 다른 측면을 제시하고, 소개 텍스트가 각 전시 섹션을 설명한다. 작품의 요점과 비교는 면밀하게 제시된 작품의 시각적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른 예는 브르노 비엔날레에서 몇 년 전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정리한 전시이다. 실용적인 이유로 작품이 갤러리 공간에 왠만큼 고립적으로 디스플레이 된 사실에 비추어볼 때, 전시방식은 그 역할을 더욱 명확히 하려 했으며, 클라이언트-디자이너-대중 의 삼각관계를 개략화했다. 디자이너의 작품은 갤러리 전시를 통해 지역 대중의 평가를 받게 되므로 클라이언트를 위한 공간이라는 분실된 요소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디자이너의 회고적 코멘트보다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과 관련된 어록이 제시되었다. 본래의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 개요가 작품의 목적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대중은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통되었는가를 평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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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맥락을 재생하려는 회고적 시도는 최종적 해답은 아니며 거기에는 ‘미술관/갤러리가 그 자체로 타당한 맥락이 아닌 듯 박물관이나 갤러리 안에 바깥세상을 재생하려 하는 것엔 그릇된 점이 있다. 엑스페리멘탈 젯셋이 말하는 것처럼 나름의 함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선 사물이 제시되는 공간의 맥락에 사물이 원래 디자인된 맥락이 매우 다르다는 것에 아주 솔직해져서 미술관적인 맥락을 될 수 있는 한 강조하는 것이 최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브르노의 모라비언 갤러리 (the Moravian Gallery) 와 함께 대중에게 특정한 세계의 현대 그래픽디자인의 양상과 성향에 대한 ‘ 그래픽디자인전시 ’ 를 제시하려 한다. 극단적 자의식과 함께,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갤러리 외부에서 작품을 가져오기보다는 갤러리를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전시를 위한 맥락을 재창조하기 보다는 갤러리 상태를 작품의 맥락화시키려 는 것이다.. 우리는 19 개의 디자이너/그룹에게 본 전시의 포스터를 제작하도록 의뢰하였다. 포스터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 포스터 컬렉션은 전시의 일부분이며 또한 인쇄된 포스터는 전시소식을 알리도록 시내에 배포된다. 분명히 이것은 자기의 꼬리를 무는 뱀의 성격을 가진 위험한 전략이면서도 그런 브리프의 자기지시적 성격은 작업 프로세스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보통의 디자인 여건은 갤러리에서 창조 된다: 디자이너들은 4 주 동안 직접적으로 포스터를 만들도록 요구받는다, (최소한의) 디자인비를 받으며, 그들이 수행하는 타 프로젝트처럼 작업을 취급하도록 한다. 본 전시에서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통상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가시화되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본래 요구사항과 모든 스케치들은 전시에서 지배적으로 전시되었다. 그 목적은 작품을 치켜세우거나 가치판단을 쉽게 하는 소재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제작하였으나 완결되지 못한 것들을 포함한 스케치들을 제시하고 작업 과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실패는 시각예술에 대해 성공의 제시들보다 더욱 많은 정보를 제공 할 수 있다.

전시 자체에 관한, 자기지시적 성격의 프로젝트는 새롭진 않다. 순수예술에서는 이런 성격의 작품들이 오랫동안 제작되어 왔다. 유명한 예로 예술의 오브제 제시에 질문을 던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모순적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있다. 1960년대엔 솔르윗(Sol LeWitt)과 같은 개념예술가들이 예술의 과정을 근본 요소들로 환원하는 작업을 하였다. 네 가지 기본적 선과 색상 ‘Four Basic Kinds of Lines &Colour’은 기본적 도서인쇄 기술 연구 프로젝트이다. 표준적 CMYK 색상을 사용하여 르윗은 0, 45, 90, 그리고 135도의 각도의 선을 그리고 복제 기술의 표준 각도를 따르도록 했다. 4개의 잉크로부터 시작하여 그는 16가지 기초 색상을 만들 수 있었으며 각각 다른 밀도의 검정색 잉크를 사용하여 16가지의 그레이스케일의 농담을 만들 수 있었다.

디자인에서의 가장 자기지시적 작품은 영국의 예술디자인그룹 힙그노시스 (Hipgnosis)가 제작한 숨겨진마케팅설득을 디자인으로 드러내는 XTC 앨범 Go 2 (1978)이다. 앨범 표지에는 ‘이것은 음반표지이다. 이 글은 레코드 표지를 위한 글이다. 디자인은 레코드 판매를 돕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 주의를 주고 싶으며 본 음반을 선택하도록 권장한다. 그렇다면 선택 후에 당신은 XTC’s Go 2 album의 음악을 듣도록 설득될지도 모른다. 이후 우리는 당신이 이 음반을 ‘구매’ 하길 바란다. 당신이 더 많이 구매 하면 할수록 버진레코드사, XTC 의 매니저 Ian Reid, 그리고 XTC 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 와 같은 텍스트가 진행되면서 결국 구매자를 피해자로 부르며, 마케팅의 트릭을 설명하여 표지 디자인만 보고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한심한 행위라는 것을 암시한다.

전시를 위한 우리의 전략은 그 현혹적인 아우라로부터 디자인 과정을 벗겨내어 디자인전시를 위한 가능한 포맷을 제안함과 동시에 관객이 기대하는 ‘그래픽디자인전시’의 기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 bilak square 900

    Peter Biľak works in the field of editorial, graphic, and type design. In 1999 he started Typotheque type foundry, in 2000, together with Stuart Bailey he co-founded art & design journal Dot Dot Dot, in 2012 he started Works That Work, a magazine of unexpected creativity, in 2015 together with Andrej Krátky he co-founded Fontstand.com, a font rental platform. He collaborates with the choreographer Lukas Timulak on creation of modern dance performances, and together they started Make-Move-Think.org, a foundation for interdisciplinary artistic collaborations. Peter is teaching at the Type & Media, postgraduate course at the Royal Academy of Arts, The Hague. Member of AGI (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